삼성전자 등 계열사 6곳이 미국 AI 인프라 기업 헬릭스에 총 10억 달러를 투자하며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영역까지 발을 넓혔다.
29일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S, 삼성SDI,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계열사 6곳이 미국 AI 인프라 기업 ‘헬릭스 디지털 인프라스트럭처’에 총 10억 달러(약 1조3600억원)를 투자하는 창립 투자자로 참여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5억 달러, 나머지 다섯 곳이 5억 달러를 나눠 부담하는 구조다.
헬릭스는 올해 6월 세계적인 사모펀드 KKR이 세운 회사로, 창립 투자자 명단에는 삼성 외에도 엔비디아, 미국 전력회사 비스트라, 쿠웨이트투자청 등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이번 삼성의 참여로 헬릭스가 확보한 총 자본 약정액은 110억 달러를 넘어섰다. KKR은 지금까지 전 세계 디지털·전력 인프라 분야에 75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온 회사로, 2009년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로도 인프라·사모펀드·부동산·크레딧 분야에서 90억 달러 규모를 집행한 이력이 있다.
최근 AI 경쟁의 무게중심은 칩 성능에서 ‘전력’ 쪽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아무리 좋은 GPU를 잔뜩 쌓아도 이를 24시간 돌릴 전기가 부족하면 무용지물이라는 위기감이 업계 전반에 퍼진 탓이다. 헬릭스는 아마존웹서비스 전 최고경영자 아담 셀립스키가 이끌며, 데이터센터 건설과 전력 조달을 한 회사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짜고 있다. 이 구조 안에서 각 참여사의 역할도 뚜렷하게 나뉜다. 엔비디아는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기술 파트너, KKR은 장기 자본과 인프라 전문성을 대는 역할을 맡고, 비스트라는 헬릭스의 ‘우선 전력 공급자’로 참여해 실제 전기를 대는 축을 담당한다.

헬릭스가 짓겠다는 것은 데이터센터와 그 옆에 나란히 세우는 전용 발전소를 한 세트로 묶는 방식이다. 공장을 지을 때 아예 변전소까지 함께 깔아서 정전 걱정 없이 기계를 돌리는 것과 비슷한 발상인 셈이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개발·운영은 물론 기저·탄력 전원 발전, 송배전 설비, 광통신망까지 사업 영역에 포함된다.
삼성 입장에서 이번 투자는 반도체 제조사라는 역할에서 한발 더 나아가 AI 인프라 생태계 전반의 ‘주주’로 위상을 넓히는 의미가 크다. 실제로 참여한 여섯 개 계열사의 면면을 보면 단순한 재무적 투자를 넘어, 각 사가 가진 사업 역량을 헬릭스라는 하나의 플랫폼에 연결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반도체를 공급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지난해 인수한 데이터센터 공조 전문기업을 통해 냉각 솔루션을 제공하는 디바이스경험(DX)부문, 데이터센터·발전 설계·조달·시공(EPC)을 맡는 삼성물산 건설부문, 데이터센터 구축·운영과 GPU 서비스형 인프라(GPUaaS) 사업을 하는 삼성SDS, 데이터센터용 무정전전원장치(UPS)와 배터리 백업 유닛을 담당할 삼성SDI까지, 각 계열사가 이미 보유한 사업이 헬릭스라는 하나의 접점으로 모이는 구조다. 삼성 측은 반도체부터 냉각 설비, 건설, IT서비스에 이르는 계열사 역량을 한데 묶어 헬릭스와의 협력 범위를 계속 넓혀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시장의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투자 소식이 전해진 29일 오전 삼성전자 주가는 2.13% 상승했는데, 같은 시간 코스피지수는 오히려 0.53% 하락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투자가 개별 종목 차원의 호재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준다.
30일에도 국내외 매체들은 엔비디아와 나란히 창립 투자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삼성의 행보를 다시 조명하며 관심을 이어갔다. 반도체 회사가 데이터센터의 돈줄까지 함께 쥐는 모습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데이터센터 하나를 짓는 데 반도체·전력·금융이 한데 뭉치는 합종연횡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AI 인프라 경쟁이 칩 제조를 넘어 전력과 자본까지 아우르는 종합 게임으로 번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