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가 원전·발전엔진 공장으로, HD현대의 1조 베팅

HD현대중공업이 9월 10일 발전엔진과 소형모듈원전(SMR) 설비에 1조722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처음엔 주가가 빠졌지만 다음 날 5%대 반등했고, 증권사들은 목표주가를 잇달아 올려 잡았다.

지난 10일 HD현대중공업이 울산에 총 1조722억원을 투자해 발전용 엔진과 SMR(소형모듈원전) 핵심 설비 생산기지를 새로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8336억원은 육상 발전용 ‘힘센(HiMSEN)엔진’ 생산기지에, 나머지 2386억원은 SMR 주기기 제작 전용 공장에 투입된다. 배를 만들어 온 조선소가 이번엔 육지의 발전소와 원자로 부품 쪽으로 눈을 돌린 셈이다.


발단은 AI 열풍이 몰고 온 전력난이다. 챗GPT류의 AI 서비스를 굴리는 데이터센터는 웬만한 도시 하나와 맞먹는 전력을 잡아먹는데, 전 세계적으로 이 전력을 댈 발전 설비가 크게 부족해졌다. HD현대중공업이 만드는 힘센엔진은 원자력이나 대형 화력발전소처럼 짓는 데 수년씩 걸리는 설비 대신, 비교적 빠르게 세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중형 발전엔진이다. 이번 투자로 이 엔진의 생산능력을 현재 3기가와트(GW)에서 2030년까지 7.2GW로, 그중에서도 데이터센터 등 육상 발전용은 0.7GW에서 4GW까지 늘리기로 했다. 원전 핵심 부품인 SMR 주기기 공장도 함께 짓는데, 조선소에서 오래 다뤄 온 두꺼운 금속 구조물 용접·가공 기술이 원자로 압력용기 제작에도 그대로 쓰인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주식시장의 첫 반응은 뜻밖에 시큰둥했다. 발표 당일인 10일 HD현대중공업 주가는 장중 한때 오르다가 오히려 상승분을 반납하고 전 거래일보다 2.16% 내린 채 마감했다. 초대형 투자 발표치고는 맥 빠지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하루 만인 11일 분위기가 바뀌어 주가는 5.62% 오른 47만9000원으로 뛰어올랐고, 계열사인 HD현대마린솔루션도 7%대 급등했다. NH투자증권은 이날 데이터센터용 발전엔진 확대 효과를 반영해 2029년 영업이익 추정치를 7% 높이고 목표주가도 기존보다 3% 올린 72만원을 제시했다. 발전용 중형엔진 가격이 경쟁 발전원보다 20% 이상 저렴하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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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첫날과 다음 날 반응이 엇갈린 이유는 투자금 회수 시점에 있다. 새 생산기지는 내년 1분기 착공해 2028년에야 가동을 시작하고, SMR 공장은 2029년 완공이 목표다. 당장의 실적에는 보탬이 안 되고 오히려 대규모 자금이 먼저 빠져나가는 구조라, 시장이 하루 정도는 그 부담을 먼저 곱씹은 뒤에야 장기 성장성 쪽으로 시선을 돌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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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이번 투자를 조선업 실적에만 기대 온 HD현대그룹이 전력·에너지 설비로 사업 축을 넓히는 신호로 본다. 선박 가격이 정체된 상황에서, AI 데이터센터發 전력 수요라는 새로운 성장 축을 찾아 나선 것이다. 다만 아직은 생산기지를 짓겠다는 계획 단계이고, 실제 대규모 수주로 이어지려면 몇 년이 더 필요하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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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움직임이 반가운 건 대기업만이 아니다. SMR은 원전이 2022년 국가핵심전략산업으로 지정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시장이라, 그전까지는 관련 창업이나 중소기업 진입 자체가 드물었다. 최근 들어서야 소재·부품·장비나 유지보수 영역에 도전하는 기업들이 하나둘 나타나는 단계다. 예컨대 원전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해 온 한 중소 기계업체는 정부의 팁스(TIPS)·초격차 프로젝트 등 스타트업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사업을 키워가고 있고, 원전 설비의 비파괴 검사를 인공지능으로 진단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스타트업도 초기 투자를 유치하는 등, 완성 원전이나 대형 주기기가 아니어도 그 주변부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다. 정부 역시 SMR 혁신제조 국산화 기술개발 사업에 2026년부터 2031년까지 약 2,700억원, 혁신형 SMR 기술개발사업에 2023년부터 2028년까지 약 4,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하는 등 국산화 지원을 확대하고 있어, 관련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이라면 이런 정부 지원사업과 대기업 협력망 양쪽에서 기회를 엿볼 만한 시점이다.

다만 이 시장의 일정표는 결코 짧지 않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HD현대의 이번 SMR 공장만 해도 완공까지 4년 가까이 남아 있고, SMR 자체가 아직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 사례가 없는 기술이라 실제 발주와 매출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차가 예상된다. 발전엔진 쪽 역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계약으로 확정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구조여서, 관련 부품·설비 공급을 준비하는 중소기업이라면 대기업의 설비 투자 발표 시점과 실제 발주 시점 사이의 간극을 감안해 자금 계획을 짜는 편이 안전하다.

결국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짓겠다고 밝힌 설비가 계획대로 가동에 들어가는지, 그리고 그 사이 AI 데이터센터發 전력 수요가 실제 수주 계약으로 이어지는지다. 국내 조선·중공업 업계 전반이 배 대신 발전 설비로 새 먹거리를 찾는 흐름과 맞물려, HD현대의 이번 베팅이 이후 실적표에 어떻게 찍히는지가 다음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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