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회사가 로봇 관절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대차그룹의 부품 계열사 현대모비스가 9월 10일 경기 용인 기술연구소에서 ‘2026 R&D 테크데이’를 열고, 개발 중인 로봇용 액추에이터 2종을 처음으로 실물 공개했다. 행사는 18일까지 이어지며 국내 주요 협력사와 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다. 격년으로 열려 올해가 세 번째다.
액추에이터는 제어기가 보낸 신호를 받아 로봇의 관절을 실제로 움직이는 구동 장치다. 사람으로 치면 뇌의 명령을 근육으로 바꿔 팔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부분에 해당한다. 모터와 감속기, 센서, 제어 회로가 한 덩어리로 묶여 있어 이 부품의 정밀도와 힘이 로봇 전체의 성능을 좌우하고, 사람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한 대에 수십 개가 들어가는 고부가 부품이기도 하다.
로봇 부품 시장은 그동안 일본의 정밀 감속기 업체들이 주도해 왔고, 완성 로봇 쪽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이미 인수한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와 테슬라의 옵티머스, 중국 업체들이 경쟁하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노리는 것은 완성 로봇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다. 자동차에서 오래 다뤄 온 모터·제어·구동 기술을 로봇으로 옮겨 부품 공급사로 자리 잡겠다는 구상이다.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로봇인가
그룹 차원의 그림도 뒷받침한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5년간 국내에 125조2,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면서 로보틱스를 미래 신사업의 한 축으로 꼽았다. 그룹은 앞서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고 엔비디아와 자율주행·로봇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어, 현대모비스의 부품과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완성 로봇, 그룹 공장이라는 수요처가 한 울타리 안에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자동차 부품사들이 잇달아 로봇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전기차 전환으로 엔진 관련 부품 수요가 줄어드는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내연기관 시대에 쌓은 제조 역량을 현대모비스가 로봇이라는 새 시장에서 얼마나 빨리 매출로 바꿔 내느냐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로봇 부품은 아직 표준이 정해지지 않아 초기 진입자가 규격을 선점할 여지가 크다. 다만 액추에이터는 정밀 가공과 오랜 양산 경험이 필요한 분야여서 시제품 공개와 실제 대량 공급 사이의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산화율 40%, 아직 채워지지 않은 시장
이런 흐름은 대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로봇 구동 부품의 핵심인 감속기는 로봇 전체 원가의 30~4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큰데, 이 시장은 그동안 일본의 하모닉드라이브시스템즈와 나브테스코 같은 기업이 세계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장악해 왔다. 한국은 제조업 노동자 1만 명당 산업용 로봇 대수를 가리키는 ‘로봇 밀도’에서 2025년 세계 1위(1,012대)를 기록할 만큼 로봇을 많이 쓰는 나라지만, 정작 감속기·액추에이터 같은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은 40%대에 머물러 있다. 로봇은 많이 쓰지만 그 안의 핵심 부품은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라는 뜻이고, 뒤집어 보면 국내 중소 부품기업에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시장이 크게 남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에 최근 미국에서 나오는 공급망 재편 움직임도 국내 중소 부품기업에는 눈여겨볼 변수다. 미국 의회에서는 연방기관의 중국산 로봇 조달·운용을 제한하는 법안과, 안보 위협으로 판정된 로봇의 미국 내 판매까지 제한할 수 있는 법안이 잇달아 발의됐다. 중국산 로봇과 부품을 겨냥한 조치이지만, 결과적으로 비(非)중국 공급망을 찾는 미국 로봇·빅테크 기업들의 수요가 늘고 있고, 국내 감속기·액추에이터 기업들이 이 반사이익을 노리고 있다. 실제로 국내 로봇 부품기업 여러 곳이 한국로봇산업진흥원 공동관을 통해 북미 최대 로봇·자동화 전시회에 참가해 초기 고객사와 레퍼런스 확보에 나서는 등, 정부 차원의 해외 진출 지원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다만 이런 기회에도 분명한 한계는 있다. 미국의 공급망 규제가 동맹국이라고 예외를 두는 것은 아니어서, 한국 기업이라 해도 기술력과 신뢰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과제는 그대로 남는다. 또한 해외 선도기업 중에는 액추에이터를 포함한 핵심 부품을 아예 자체 생산하는 수직계열화로 대응하는 곳들도 있어, 부품 전문기업 입장에서는 대기업의 자체 내재화 시도와도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결국 표준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지금이 진입에는 유리한 시점이지만, 그 문이 열려 있는 기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