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데이터센터에 쓰이는 중국산 부품에 대한 안보 규제를 검토하면서 국내 반도체·전력기기 업계의 반사이익 기대가 커지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27일(현지시간) 미국 내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에서 중국산 핵심 부품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짚으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국가 안보 차원의 문제로 보고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데이터센터는 5427개에 달할 정도로 빠르게 늘고 있는데, 정작 변압기나 전력기기 같은 핵심 설비를 제때 확보하지 못해 완공이 밀리는 곳이 많고, 이 공백을 조립식 공법과 부품 공급망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이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다. 자국 내 수요 부진을 겪는 중국 제조사들이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도 이런 흐름을 부추기고 있다.
AI 붐 이후 미국에서만 수천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가 동시다발적으로 지어지면서, 발전기·변전 설비·냉각장치 같은 전력 인프라 장비 자체가 병목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짓는 속도보다 전력을 끌어오는 속도가 항상 더디기 마련인데, 여기에 미·중 갈등까지 겹치면서 특정 부품을 어느 나라산으로 조달하느냐가 안보 문제로 격상된 셈이다. 만약 미국이 실제로 중국산 부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면, 북미 지역에 이미 공급망을 갖춘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의 수주가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 병목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주요 전력기기의 납기는 2년 이상으로 늘었고, 일부 변압기 가격은 최근 5년간 4~9배 뛰었다. 미국 내 변압기의 70% 이상은 설치한 지 25년이 넘은 노후 설비여서, AI 데이터센터발 신규 수요에 노후 설비 교체 수요까지 겹친 상황이다. 수요가 공급을 크게 앞지르는 시장이라 규제가 강화되지 않더라도 공급자가 우위에 서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국내 업체들은 이미 실적으로 수혜를 확인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초고압 변압기 수출액은 7억3828만달러로 전년보다 83% 급증했고, 올해도 1~7월 누계 수출액이 5억9558만달러로 지난해 연간의 80% 이상에 이르렀다. 미국은 지난 8월 하순에도 안보 위협을 이유로 69킬로볼트(kV) 이상 송전망과 변전소, 발전소에 쓰이는 변압기·고압 차단기 등 특정 외국산 전력기기의 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한 바 있다. 규제 대상국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중국산 장비를 겨냥한 조치로 읽혔고, 이번 데이터센터 부품 규제 검토는 그 연장선에서 범위를 데이터센터 공급망으로 넓히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향한 기대도 함께 커지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올해 상반기 매출의 64%가량이 미국에서 나올 정도로 미국 AI 데이터센터향 메모리 수요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다. 다만 이런 반사이익 기대와 별개로, 미국이 자국 내 생산을 하지 않는 반도체에는 높은 관세를 물리겠다는 압박도 함께 이어지고 있어 두 회사로서는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이기도 하다. 규제의 방향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셈법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흐름이 대기업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전력기기 산업의 구조에 있다. 변압기나 차단기 같은 완제품 한 대에는 철심·권선·절연 소재·부싱 등 수많은 하위 부품이 들어가고, 이를 공급하는 협력업체 네트워크가 뒤에 있다. 완성품 업체의 북미 수주 잔고가 늘어나면 그 뒤에 있는 중견·중소 부품업체로 발주가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다. 실제로 국내 전력기기 대기업들이 이미 수년치 일감을 확보해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협력업체로서는 중장기 물량을 가늠하기 쉬운 시기이기도 하다. 반대로 미국이 안보 기준을 강화할수록, 미국 시장에 납품하는 기업은 원산지 증빙이나 부품 출처 관리, 보안 요건 같은 문서·인증 대응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함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다만 반사이익이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규제가 실제로 어느 범위까지, 어떤 시점에 적용될지는 아직 검토 단계이고, 지난 8월 행정명령도 송전망 중심이라 지역 배전망은 대상에서 빠져 있어 기업별 수혜 폭이 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자국 제조업 보호를 명분으로 한 관세와 현지 생산 요구가 강해지면, 한국 기업에는 오히려 비용 부담이나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미국이 중국을 밀어내는 큰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이 얻는 기회와 부담은 동전의 양면에 가깝다.
이런 국면에서 중소기업이 참고할 대목은 특정 시장이나 고객에 대한 쏠림을 줄이는 판로 다변화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은 한 나라, 한 품목에 의존하던 거래 구조가 정책 하나로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수출 중소기업이라면 미국 시장의 기회를 살피되, 원산지 관리 체계를 정비하고 다른 지역 바이어까지 함께 발굴해 리스크를 분산해두는 접근이 현실적이다. 정부의 수출바우처나 해외 전시회 지원 같은 제도를 활용하면 이런 준비 비용을 덜 수 있는 만큼, 관련 사업 공고를 꾸준히 확인해두는 것도 방법이다.
결국 이번 사안은 미국이 자국 AI 인프라의 ‘급소’인 전력 장비 공급망에서 중국을 밀어내려는 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누가 빈자리를 채우느냐를 두고 국내 기업들의 반사이익 기대와 관세 리스크가 동시에 시장의 관심사로 떠오른 모습이다. 규제 검토가 실제 조치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